믿음의 형님 성욱 할머님을 추모하며

최 인영 권사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합니다. 과연 들고 보니 왜 그리도 빠른지. 걷잡을 길 없는 세월의 흐름입니다.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내 영혼 깊숙이 스며있는 표현할 길 없는 성욱(Andy) 할머님과의 우정, 그 고우신 마음 부드러운 결이 담긴 믿음의 형님을 추모하며 지면으로나마 열거해 봅니다.

지난 2004년 4월 26일 새벽 비몽사몽간에 홀연히 나타난 신 임철, 성욱 할머님. 아름답고 화려한 나삼 옷차림에 족두리까지 쓰시고 나타나시더니 삽시간에 미소 띄우시며 사라지셨습니다. 순간 너무나 아쉬워 옆에서 곤히 잠드신 분을 깨워 사연을 여쭈니 이제 떠나실 때가 되셨나보다고 둘이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다음다음 날인 28일 복지회를 통해 성욱 할머님의 본향 집으로 돌아가신 비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별의 아픈 여운 우리들의 가슴을 저미게 안타깝게 합니다. 하나님의 하시고자 결정하심을 엄감생심 어느 누가 막으오리까. 도저히 불가항력임을 압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성욱 할머님 양위분을 우연히 뵙게 되었습니다. 따님의 초청으로 도미하실 때입니다. 엄하시고 인자하신 성욱의 조부님이신 교장 선생님을 모시고 조심조심 옆에 계신 성욱 할머님. 60고개를 넘기신 분으로 마치 만인의 귀감이 된 인상을 지니신 믿음의 분이셨습니다. 그의 여인상을 말씀드리면 그 말씨나 마음가지심이나 맵씨, 솜씨 등이 옛 성인이 말씀하시는 한국이 지닌 여인에 틀림이 없으셨습니다.

성욱 할머님께서는 일찍이 명문가 신씨 가문의 맏따님으로 태어나시어 여인으로서의 예의범절을 몸에 익히시고 외유내강의 마음씨로 항시 온유와 겸손을 지니시고 계셨으며, 만사를 아시는 척 나타냄이 없으셨습니다. 우리가 첫 만난 그 후 몇 차례를 손자 돌보시기 위해 도미하셨고 영감님과 사별하신 후 3년 전부터는 이곳 큰따님 내외분 곁에 영주하시기를 결심, 우리가 사는 이곳 APT에 머무르셨습니다. 지난날에는 마음속으로 조심해야 되는 사이였기에 많이 경원도 하고 조심조심 지내왔는데 이젠 바깥 선생님도 아니 계시고 쓸쓸히 여생 보내심이 안쓰러웠습니다. 성욱 할머님께선 항시 너그러운 미소가 입가를 맴돌며 세상에서 제일 사랑이 많으신 분으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 노인님들 모임에는 자주 피하시고 홀로 성경 읽으시는 일과 따님이 권하시는 500개, 1000개로 된 조각 맞추기를 즐기며 하십니다. 이 게임은 노인들에 치매도 해소시키고 정신 통일시키는 데는 제일 적격이라고 합니다. 열심히 작업하시기에 따님 내외분 재료장만에 노심초사 수고가 많으셨을 것입니다. 완성시킨 작품은 표구하여 벽에 장식하는 역할도 따님 내외분에 몫이었습니다.

사람들 모이는 곳에는 될 수 있는 한 사양하신 원인은 여인 3명만 모여도 시끄럽고 흔히 남의 말이 흘러나오며 칭찬보다는 흉이 나옴이 기정사실이니 이를 몹시 꺼려하셨습니다. 물론 남의 말 전가하시는 것은 특히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몸에 괴로운 지병을 지니고 계시면서도 단 한 마디도 찌푸리시는 표정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 시대는 참으로 공짜를 즐기는 때입니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옛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욱 할머님께선 다르십니다. 하나를 받으시면 배로 갚으시고 그 감사의 표현이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대부분의 노인들께선 아픔의 괴로움을 참지 못하시어 하시는 말씀 “죽지 못해 산다는 등, 또한 하나님께서 빨리 데려가시지 않는다는 등 참으로 하나님께서 괘씸히 여기실 말씀을 만들어 놓는데 성욱 할머님께서 절대로 아니십니다.

매일 아침 안부전화 올리면, “오늘도 감사하게 숨쉬게 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저를 사랑하시나 봅니다.” 항시 그의 말씀에선 감사 감사가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주무시는 머리맡에는 항시 성경책이 놓여있었습니다. 하루는 조심조심 여쭈어 보았습니다. “매일 매일 성경을 읽으십니까?” 하였더니 솔직한 대답 말씀 “읽고 싶어도 눈이 아물거려 한 페이지 정도밖에 못 봅니다. 그러나 옆에 놓고 자면 마음이 편안하고 잡념이 없어지고 잠이 잘 옵니다.” 하십니다. 얼마나 잘 믿으시는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시고 계심을 느꼈습니다.
이젠 뵙고 싶어도 체념하며, 떠나신 영을 위해 기도만 드리고 있습니다. 가신 그 곳은 눈물도 없고 슬픔도 없으며 미움도 없고 한숨도 아픔도 없는 낙원이라지요? 만나고 싶으셨던 분들 기쁨으로 만나시고 희희낙락 영생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나의 마음이 믿음의 형님께 쏠릴 때마다 흘러나오는 찬송을 불러봅니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아멘.             (2004/5/27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