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야기

이 종한 장로님

술 취한 사람의 증언


나는 몸과 마음이 많이 곤(困)하여 있었다.  이번 단기 선교로 집을 떠나기 전에 마무리 지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쉬지도 못하고 자신을 혹사(酷使)하다가 짐도 제대로 꾸리지 못한 채 떠나야 했던 것이다.  또 사역지에서 보게된 현실은 우리가 떠나기 전서부터 염려하던 것이 실제로 현현(顯現)하여서 우리를 고민하게 하였다.  나는 회의에 빠지고 있었다.  내가 왜, 무엇 잘났다고 선교를 왔는가.  동역을 한다는 이들의 의도가 뚜렷이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만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 쪽으로만 일의 진행을 몰고 가려고 고집하는 것만 같아 보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상(至上) 계명을 받들고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의 자세여야 할까.  선교를 한다는 사람들의 순종과 겸손은 어디로 갔는가.  사변(辭辨)의 요술을 부리면서 자신이 얼마나 성스러운지만을 나타내는데 무척 세련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은 틀림없이 말씀을 인용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마치 성경은 자신들의 떳떳치 못한 심성을 감추어 주는 방패라도 된다는 것처럼.  무슨 환영(幻影)을 좇고 있단 말인가.  불쌍한 생각이 났다.  마음이 몹시 언짢았다.  

오늘은 유카탄에서 선교를 시작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다.  아침나절에는 찌(Dzi)마을에 처음 서게되는 교회의 기초를 쌓는 데 필요한 돌을 나르는 일을 하였다.  돌을 받아서 릴레이식으로 다음 사람에게 전해 주는 일이었다. 나는 계속 돌 나르는 일을 젊은이들과 함께 하려고 하였으나 환자들을 심방 하여야 한다고 하여 일손을 멈추고 환자들을 찾아 길을 떠났다.  

이 심방을 하면서 처음으로 그곳 주민들의 주택을 보게 된 것이다.  집의 규모는 대체로 비슷비슷하였다.  열자 미만의 나비에 그 두 배 쯤의 길이가 그 내부인데, 대체로 타원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었다. 지붕은 우리의 초가와 비슷해 보이는데, 안에서는 노출된 서까래 위에 야자나무 잎처럼 보이는 짚으로 여러 겹을 단정하고 두껍게 얹어놓은 것이었다.  가구래야 풍로 비슷한 취사도구와 작은 붐 박스 (boom box), 침대 대신에 기둥과 서까래 같은 데 매달아 놓은 햄악 (hammock) 정도였다.  벽은 흙으로 하고 집의 양끝은 다듬지 않은 나무 가지들을 성기게 박아 세워 통풍도 되게 하였으나, 또 날것들이 자유로이 들락거릴 수 있게 하여 놓은 셈이다.  이와 같이 단순한 생활 속에서도 주민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성인성 질환과 또 그곳 특수의 풍토질환을 앓으며 고생하고 있었다.  

우아한 플루메리아(plumeria/frangipani)의 꽃이 곳곳에 피어있고 몇 번 들었으나 그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주황빛 꽃이 온통 나무를 덮은 장관이며 무궁화과의 꽃도, 또 그 외 보지도 못하던 수많은 꽃들이 만발하고 있었다.  바나나며 밀감(蜜柑) 등속의 이름도 모를 여러 나무가 과일을 주렁주렁이 달고 있는 이 열대의 지상(地上) 천국에도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無知)가 있고 어두움이 있는 것이다.  ‘아아, 하나님, 이들을 보소서.  이들은 저희보다 더 천국에 가깝나이다.’하며 나는 고백하였다.

날씨가 무더웠다.  하나님께서 여름 성경학교에 모인 아이들을 위하여 구름으로 뜨거운 햇볕을 막아 주셨다.  이야기와 윤무(輪舞)가 끝난 후 아이들을 공회당 마당 세로로  턱이 진 곳에 일열로 앉히고 전도부에서 준비한 공책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크레용과 마커를 그 아이들이 골라서 쓸 수 있도록 그 앞에 늘어놓았다.  처음에 아이들은 (아마 공책을 학교에서 쓰고 싶었던 까닭이었는지) 그냥 들고만 있었다.  나는 말을 못하니까 (눈치도 없이) 몸짓으로 그리는 시늉을 해 보이며 아이들을 채근하였다.  이 아이들이 무얼 그릴까 생각하느라고 시작을 못하는 것으로 나는 생각하였던 까닭이다.  잠시 후 아이들은 마당에 엎드리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몇 아이는 사람을 그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교회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교회 앞에는 교회에 이르는 길도 그리고 첨탑 위의 십자가도 그렸다.  ‘아아, 하나님, 이 아이들을 보소서.  그들이 그림으로 대신하는 이 기도를 보소서.  그리고 그들이 갈망하는 하나님의 집을, 그 집의 빠른 완공을 허락하소서.  그들에게 영생의 길을 열어주소서.’ 하며 나는 중얼거렸다.

그 중에 한 아이는 친구와 같이 온 아이인데 좀 수줍어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명가명 그 아이를 ‘잘 한다. 잘 한다.’ 하며 치켜올리고는 하였는데, 어쩌다 보니까 그 애 앞에 웬 중년 남자가 쪼그리고 앉아서 계속 말을 시키는 것이었다.  먼 빛으로 봐도 그는 좀 거나하게 취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아이는 수줍어하는데 하며 나는 그 쪽으로 갔다.  그 중년 남자는 그 아이가 자기의 자식이라고 하였다.  나는 그 아이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칭찬하여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 사람에게, “Jesus le ama! (헤쑤스 레 아마!)”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곱이 낀 그의 눈은 갑자기 빛을 내면서, “헤쑤스 에스 엘 쌀바도르. (Jesus es el salvador.)” (예수님은 구세주이십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그의 고백에 깜짝 놀라면서 나는 ‘Si, si!' (그래요, 그래요!) 하며 힘주어 말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그는 또 말하였다.  “헤쑤스 에스 라 비다! (Jesus es la vida!)”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옆에 벼락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큰 감동을 받았다.  [나는 여기까지 만은 그의 말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쌀바도르가 영어의 savior인 것은 기왕에 알았던 바이고, 비다(vida)는 vie, vita 의 서반아어형으로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는 계속 나에게 증언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서반아어 실력은 즉시 바닥을 들어내고 말았다.  나는 그의 계속되는 간증을 더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급히 옆에서 애들의 사진을 찍고 있는 타오를 불러 통역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그 근처에서 우리를 관찰하고 있던 우리 선교단의 한 분은 이 사람의 술 주정을 우리가 받아줄 필요가 없다고 단정하고 타오를 불러 딴 곳으로 데려갔던 것이다.  나는 미안해하는 기색으로 그의 간증의 옳음을 몸짓 발짓으로 표현하며 어색하게 그를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의 간증을 더는 이해할 수도, 들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고갈된 영혼을 주님께서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이 술 취한 사람을 통하여 나에게 위안을 주심으로 믿음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임을 나는 즉시 깨닫고 감사함에 들떠 있었다.  ‘아아, 하나님, 주님은 영광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저 같은 죄인도 사랑하십니다.’ 하며 나는 감격하였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조금만 사랑하여도 하나님께서는 그 몇 천, 몇 만 배의 사랑으로 위로하여 주는 분이시다.  술 취한 사람을 통하여서라도 주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분이시다.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분이시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서 우리를 세밀히 관찰하시며 위로하여 주는 분이시다.  그 감동으로 나는 모든 불평과 불만을 하나님께 맡기고 더 열심히 사역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아, 하나님!

들꽃


“들꽃은 피어 흩어졌어라...”하며 소월은 저절로 흘러나오는 영탄(詠歎)의 시를 썼었다.  금년은 특히 들꽃이 그토록 만발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그렇게도 훌륭히 드러내고 있을 수가 없다.  도로 연변의 언덕에는 자색, 분홍, 흰빛의 자운영(紫雲英, crown vetch)이 한창이고,  하다못해 엉겅퀴의 꽃마저도 연보라 빛 안개처럼 벌판을 더욱 깊숙하게 꾸미고 있다.  씀바귀 종류의 노란 꽃, 십자화(十字花)과의 흰 꽃이 여기 저기 만발하여 희고 노란 모자이크를 완성시킨다.  길가에 노란 콩꽃이 무더기무더기 피어 황금색 양탄자처럼 깔린 것은 보나마나 잔개자리 꽃(trefoil).  포오란 꿈같아서 쳐다보면 정신이 아찔해지는, 무더기로 피어서 들판을 가득히 채우는 아마(亞麻; flax)꽃, 잎을 으깨면 화안한 냄새가 나는 여러 가지 빛깔의 bee balm(혹은 monarda), 잎맥이 댓잎처럼 깔끔하고 그 뿌리로는 차를 달여 마시는 둥글레(Solomon's seal), 긴 꽃대를 올리고 그 정상에 홍홍황색의 앙증스러운 꽃을 피우는 인디안의 페인트 붓(Indian paint brush), 원추리(day lily), 찔레꽃(wild rose), 야생 호랑나리 꽃(Turk's turban), coneflower, 흰빛, 보라빛의 잠자리 꽃, 잎을 따서 말렸다가 차로 끓여 마시는 yarrow, 키 높이 노란 꽃을 피우는 black-eyed Susan, 달맞이꽃(evening primrose), 보랏빛이나 흰빛의 echinacea, 가는 무명실로 곱게 짠 레이스 같은 Queen Anne's lace.  여뀌의 꽃이라고 무시할 것인가?  아름다운 golden rod, 좀 숲에 들어가면 그늘의 어두운 곳을 밝히고 있는 쥐손이 풀(crane's bill), 또, 물 있는 곳에는 수련, 수련보다는 잘 눈에 뜨이진 않지만 깨끗한 흰 꽃을 피워 서있는 arrowhead,  물망초(forget me not).  아무리 해도 일일이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아, 대지는 하나님께 이와 같이 찬양(讚揚)을 올리고 있다.  아니, 하나님의 영광(榮光)은 그 속에서 완전하시게 이루어진다고 생각된다.  얼마나 올차고 뻐기지 않고 열렬하며 순수한 찬양인가?  나 같은 죄인이 올리는 찬양과 영광은 그 만큼 퇴색하고 밝지 못하다.  타마스 머튼(Thomas Merton)은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고 한다.

This flower,
this light,
this moment,
this silence --
The Lord is here.
Best because the flower is itself,
and the silence is itself
and I am myself.

(이 꽃
이 빛
이 순간
이 정적 --
주님께서는 여기 계시다.
이 꽃이 스스로 꽃이기 때문에,
이 정적이 정적이기 때문에,
또 나는 나이기 때문에.)

다시금 이 야생의 꽃들의 생기찬 숨결 속에서 나는 내 믿음의 정수리에 시원한 물 부음을 받는다.  이제는 모든 것이 새로워져야하고 정말 언제나 정신차리고 깨어있어야 한다.  

“욕쟁이에 대하여”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였다고 기억한다.  그 즈음 세계 전후 문학 전집이라는 것이 발간되었는데, 그 전집의 일본편에 어떤 작가가 자기 작품의 당선소감인가 작가의 변(辯)인가 하는 ‘핑계’로 쓴 글의 제목이 “욕쟁이에 대하여”라는 글이었다.  한 페이지 정도나 되었을까하는 아주 짤막한 글이었지만 나는 그 작가의 이름은 벌써 잊어버렸는데도 그 글의 요점만큼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내용은 대체로 욕쟁이들의 사회적 공헌을 지적하는 글이었다.  그는 로마시대에는 욕쟁이들이 특별한 사회적 내지는 법적 보호를 받으면서 탄핵의 역할로 사회에 공헌하였음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체로 사회적 부조리와 위정자들의 부정을 “욕하면서” 민중의 이익과 권리보장을 위하여 헌신하였던 것이다.  구태여 욕쟁이라고 상스러운 말로 그들을 매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부조리(不條理)라든가 무엇이라도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경우에는 그런 것이 온당히 지적되어야하고, 지적된 비평이 건설적이라면 그 비평을 받는 사람도 담담히 그 지적된 바를 받아들여서 시정되어야 할 것은 시정하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어에 ‘거실(居室)에 있는 코끼리를 없다고 간주한다(to ignore the elephant in the living room)’라는 표현이 있다.  뚜렷이 안방에 앉아있는 코끼리를 못 본체하며 그런 상황을 시인(是認)하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것은 타성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그 거대한 코끼리를 역부족으로 어쩔 수 없는 경우여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간혹은 역겨워서도 없는 것으로 간주해 버리는 경우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렇게 자신을 속여가며 코끼리는 없다고 간주한다고 해서 그 거대한 짐승이 없어질 리는 없다.  없어지기는커녕 그 야수(野獸)는 내 삼 시 밥상 앞에서 나의 자양분을 다 먹으며 계속 성장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코끼리는 없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의 자기기만(自己欺瞞)은 그 짐승의 크기에 비례해서 자꾸만 팽대(膨大)하여질 것이다.  이 자기기만은 결국 인격의 붕괴(崩壞)를 초래하게 되지는 않을까.  만약 이런 상태가 나 개인 한 사람의 경우가 아니고 한 집단사회에서 전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면, 그 사회는 소망이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앞날이 촉망되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만 죽은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래가지고는 현상유지도 힘든 일이다.

구텐베르크가 활자를 발명한 것은 고려시대에 우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것으로 보면 한 이백여년 뒤진 일이었지만, 그 당시는 카톨릭이 유럽을 장악하고 있던 때여서 그가 “42행 성서”를 활자로 찍기 위하여서는 성당에서 발부하는 면죄부(免罪符, Indulgence)를 미리 돈을 주고 산 후에라야 인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면죄부라는 것은 죄를 짖기 전에 앞으로 지을 ‘죄’(성서를 손으로 사경하지 않고 새로 발명한 인쇄기술로 하는 것까지를 포함하여)에 대한 사함을 사전(事前)에 받았다는 증명서로서, 당시의 사람들은 카톨릭의 ‘성스러운’ 권위가 발행하는 이 사면증서를 비싸게 사야만 일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죄이건 아니건 권위는 많은 것을 죄로 명명하고 일종의 착취수단으로 인민을 괴롭혔던 것이다.  인간들이 인간들의 죄를 가차없이 정죄(定罪)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죄를 용서할 권한마저 소유하였다고 교인들과 일반 시민들을 농락한 것이다.  이를테면 당시의 카톨릭은 그 사회에 있어서는 ‘안방에 앉아있는 코끼리’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 코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한 방안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또 이 경우 이 코끼리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부조리의 결정체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틀림없는 부패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상태는 마틴 루터가 소위 종교 개혁을 부르짖을 때까지 무단(無斷)히 또 공공연히 계속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마틴 루터는 앞서 말한 일본작가가 말하는 “욕쟁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성자보다도 후생(後生)을 위하여 제일 훌륭한 업적을 이룬 분이라고 말하면 과언일까.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한 분이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서에는 말을 삼가라는 말씀이 여러 군데에 나오지만 옳은 말을 삼가라는 말씀은 아닌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당시의 유태인들의 허위를 얼마나 혐오하셨던가.  그리고 거기에 대한 지극히 통렬한 말씀을 자주 불사(不辭)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어느 분이 나에게 충고하신 말을 나는 기억한다.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말아라 하는 충고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성화(聖化)에의 길일까.  입을 꼭 다물고 견디고 있는 것이 성스러운 일일까?  덕이 되는 일일까?  마틴 루터가 꾹 참고, 덕을 세운다고 생각하고, 혹은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겁내어 99개 항목을 내걸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직도 중세의 짙은 암흑 속에서 지극히 쓸모 없는 쓰레기 같은 피해자로서의 인생만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진리는 언제나 누구라도 숨길 수 없는 것이다.   또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마틴 루터와 같이 진리를 대변하는 “욕쟁이”들이 우리 가운데는 없을까!

교회 안팎


담임 목사님의 안식기간(삼개월)이 시작되었다.  성도님들의 기도 속에서 목사님께서 충분한 안식을 취하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한다.  이 안식은 우리 교회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서 아무쪼록 잘 이행되고, 또 목사님은 안식하시면서 교인들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좋은 열매를 맺으시기를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내가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형님가족과 함께 충신교회의 예배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그 교회 주보에 담임 목사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당부가 있기에 형님께 그 사유를 여쭈었더니, 무슨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목사는 한 교회의 지도자이므로 항상 그 교인들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자세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봉사부와 집사회의 주관 하에 이 지역 한인들을 위한 건강강좌의 일환으로 한 혜원 박사님을 모시고 간장질환의 예방 및 최근 치료방법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또 한 박사께서는 간질환이 있는 분들을 일일이 상담하여 주셨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한 박사께서는 한국 기독교 여성의 모범이 되시는 귀한 분으로, 불우한 한국 이민 여성들을 위한 상담기관을 뜻이 같은 친구들과 필라델피아에서 여시고 현재도 계속 그 일에 종사하고 계신다.  (이분의 이 활동에 관해서는 우리 도서실에 “필라 여성”이라는 간행물 15권을 구하여 놓았으니 될수록 여러분이 읽으시고 우리도 그와 같은 봉사 단체를 구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 한 박사께서는 틈틈이 오페라를 즐기시며 그 관계로 오페라에 관한 서적을 출판하기도 하셨다.  박 춘용 장로님께서 한 박사님의 강연을 카세트와 CD로 녹음을 하여 도서실에서 무상(단, 재료비 $1)으로 필요한 분들에게 드리게 하였으니 연락하여 주시기를 바란다.  

Dr. 김 태환 집사님께서 용천 난민 구제 성금을 교민 사회를 통하여 주관하시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아낌없는 존경과 갈채를 보내 드린다.

박 승로 목사님께서 인도하신 전교인 수양회가 축복 속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가정 교회의 사역이 이것을 계기로 한층 더 큰 활력을 과시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 드린다.  우리 교회의 가정교회 사역은 4년이라는 기간동안 계속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4년 후의 오늘과 그전 구역예배로 있을 때와 정말 어떤 변화가 있으며, 또 발전을 하였는가 생각할 때가 충분히 되었다고 생각한다.  필요하다면 앞으로의 계획도 강화하여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수양회 대예배 올릴 때 성찬 후 최 영은씨가 연주한 바흐의 Wachet auf(BWV 645)는 참 청량제 같이 아름다운 효과가 있었다.  예배를 서두르는 바람에 끝을 어색하게 줄여야 했던 것은 애석한 일이다. 이와 같이 기억에 남을 음악 순서를 여기 저기 넣어보는 것도 예배의 감동을 더 진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 순덕 (Mrs. Sun Elfering) 집사님의 간장 이식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하나님의 역사 하심과 사랑이 크신 까닭이었다고 믿는다.  여러분들의 기도가 상달된 것이다.  그러나 김 집사님이 건강한 몸으로 우리와 같이 교회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을 때까지는 우리의 기도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신 유진 집사님이 친자매 못지 않은 사랑을 베푸신다는 소식은 우리의 마음에 훈훈한 봄바람같이 젖어온다.  참 아름다운 일이다.

온나라 교회와 한 건물, 한 부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서로 가족같이 두터운 정을 나누며 살아야 할 일이다.  더군다나 시(市)에서 새로 학교 건물을 짓고 우리가 주일날 사용해 오던 학교 주차장의 위치와 규모가 변경될 것이고, 그 공사가 끝날 때까지는 서로 양보하는 미덕을 보여주며 될 수 있으면 가족당 차 한 대로 교회에 오도록 하시면 고맙겠다.  또, 성도님들께서는 주차장 주변에 새로이 제작된 주차 표지를 보셨을 것이다.  대체로 교육관쪽의 주차석은 장애자와 노약자 및 갓난이들의 가족들을 위하여 할당한 것이다.  자신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자만할 수 있는 분들은 될 수 있으면 먼 곳에 주차하시기를 부탁드린다.  그리고 주차장의 표식을 존중하고 방문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방문자 주차장은 언제나 남겨놓으시기를 바란다.  모든 특별 주차장에는 해당하지 않는 분들은 필히 주차하시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선교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해 주시기를 바란다.

주차장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8월 당회를 늦게 끝내고 밖에 나오니 차 준의 건물관리 총무님이 혼자서 주차장을 수리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침 그 때 양 영웅 장로님이 팔을 걷고 달려들어 일이 끝날 때까지 도우셨다고 한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두 분께서 해 주신 것을 감사드린다.  차 총무님은 건물관리의 중대한 일들을 손수 책임지고 이행하시는 바, 한 부서에서 일하는 본인으로서는 감사할 뿐이다.  그렇게 책임감 있는 동역자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여러 성도님들께 각별히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우리 도서실은 이 미네소타에서는 최대의 한국 서적을 수집한  도서실이다.  유 병춘 원로 목사님이 한국 문화 센터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하여 한국에 가실 때마다 트렁크 가방에 무거운 책들을 나르시곤 하여 이 도서실을 시작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문화 유산을 우리가 갖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교회를 떠난 분들이 책을 돌려보내지 않고 타지로 가신 분들도 있고, 이 곳에 사시는 분들도 책을 빌려 가신 지가 몇 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반환해 주지 않아서 우리의 장서가 자꾸 줄어들고 있는 상태이다.  또 장서 구입의 예산이 위축되는 교회 재정에 의해서 많이 줄어든 것도 성도님 제위는 아실 것이다.  이런 중에도 여러 독지가들은 우리 도서실에 책을 기증해 주시는데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기증해 주시는 책은 그 값을 계산하여 헌금과 같은 혜택을 받도록 증서를 작성하여 드린다. 금년 에 책을 기증하신 분은 다음과 같다. (존칭 생략)

이 호연 하나님의 사람들 외 4권
안 경민 솔이의 추석 이야기 외 3권
한 혜원 한국 기독교 여성 인물사 1, 2
배 지연 땅은 꽃으로 웃는다. 외 29권의 책자와 `98 온누리 성경 축제 tape외 23개
홍 사익 틱낫한의 평화로움 외 1권
최 규남 하나님을 추구함 외 3권
위의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제 여러분의 제의에 의하여 옥합을 책의 모양으로 내게 되었다.  여러분들께서 수고하신 이유이지만 특별히 인쇄와 제본을 맡아 주시는 강 신철씨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앞으로는 또 이 옥합지에 광고를 내실 분이 있으면 도서실로 연락 주시기를 바란다.  한 페이지의 광고료는 $90, 반 페이지는 $50, 4분지 1페이지는 $30로 하되 모든 광고는 camera-ready copy로 되어야 접수한다.  또 우리 교회와 교인들에게 도움이 되고 교회에 덕이 되는 그런 광고에 한하여 받아드릴 것을 말씀드린다.  여기에서 생기는 수익은 옥합지에 관련된 지출에 당할 것이며, 남는 것이 있으면 도서실의 장서구입에 충당하고자 한다.

끝으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공천위원 한 분 한 분을 위하여 우리 모두 기도를 하자.  그래서 그 분들이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적(私的)인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만의 명령에 순복할 수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지도자를 뽑을 수 있도록 모두가 기도로 성원하도록 하자.  공천위원이거나 그 가족을 공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사양하여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하나님께서 우리 중에 계신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편집부

     내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환심을 사려하고 있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의 환심을 사려하고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1:10           개역 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