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후기


사순절이 성큼성큼 지나가고 있다.  두꺼비가 꽃비 속에서 참회를 한다고 노래한 시인이 있었다.  우리의 죄성을 생각할 때 우리는 아마 두꺼비보다도 더욱 모양새 없이 생겼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는 참회를 하고 있는가.  아무쪼록 이 사십일 기간 동안은 절제하며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성찰의 시간으로 지내야 할 것이다.  

봄이 그리도 머뭇거리며 한 발작 내딛고 두 발작 뒤로 가는 식이어서 그런지 봄이 무척 기다려진다.  하기는 겨우내 남회귀선에 오른 흐린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검은 외투를 입고있던 침엽의 상록수들이 이제는 밝은 초록빛으로 새초름히 옷을 갈아입고 단장이 한창이다.  붉은 가지 말채나무 (red-twigged dogwood)의 빨간 가쟁이들이 칙칙한 배경을 놓고 흡사 산호처럼 빛 곱다.  성급한 버드나무는 실가지가 금빛으로 찬란하다.  물을 길어 올리고 순금 빛으로 늘어진 실가쟁이 사이를 뻐꾸기들이 들락날락할 시절도 별로 머지 않은 것 같다.  역시 봄은 오는 모양이다.  수난절의 슬픔을 떨치고 부활의 환희가 오듯이.  

이번 호를 위하여 좋은 글을 보내주신 제위께 감사의 말씀을 각각 드릴 수는 없지만, 그 중에 특별히 언급을 강요하는 글이 있다면 그 글은 김 원우 집사님의 글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의 깊은 믿음으로 가시같이 들릴 수 있는 비평을 충분히 견제하면서 꼭 하여야 할 발언을 한 것이다.  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너무 중산(中産)계급의 안락을 누리면서 조그만 고통도 못 참아 하고 더군다나 영적 도전도 없이 편히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오래두고 생각할 일이다.

출판도서위원들은 옥합을 책의 체재로 꾸미고자 하였기 때문에 구 자혁 집사님과 여러 방도로 구상하여보았지만 아직은 우리가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이번호도 또 예전의 것과 같은 체재로 하게되었다.  구 집사님이 삽화를 실어주셨고, 또 위원들이 바라던 대로 활자체를 좀 섞어가며 꾸며보았다.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니까 격월간이던 것이 계간으로 둔갑을 하였다.  구 집사님이 머릿글을 넣다가 그리 하신 모양인데 나는 내용물을 다시 정리하다가 그걸 발견하고 그냥 실소하고 말았다.  이월달에 나왔어야 했을 이 옥합이 사월 중순에야 나오게 되었으니 틀림없이 계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구 집사님의 기지와 해학을 동시에 느끼고 나는 쓴 웃음을 웃게 된 것이다.  모두 감사한 일이다.  읽어주시는 분들게 감사한 생각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