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교육이 젊음의 묘약입디다, 허허”

  이희욱 2010. 01. 21 (5) Social IT, 사람들 |

허문영(79) 어르신. 이듬해면 꼭 여든을 맞는다. ‘뜻대로 행하여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종심(從心)을 훌쩍 넘은 지 오래. 뒤늦게 ‘뜻대로 행하는’ 새로운 삶에 푹 빠졌다.

그 ‘뜻’은 다름아닌 IT에 심었다. 허문영 어르신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 아이들에겐 ‘컴퓨터 선생님’으로 통한다. 방배동에 자리잡은 새순교회에서 은퇴장로로 활동하며, 교회에서 방과후학교를 열고 동네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친다. 젊은이들도 뜻과 노력이 여간하지 않으면 실천하기 만만찮은 일이다. 헌데 여든을 바라보는 어르신이 컴퓨터를 가르친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것도 어지간한 ‘고수’들이 적잖은 요즘 아이들을 대상으로.

도란도란 풀어놓는 삶의 발자취가 파란만장하다. “지금까지 컴퓨터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은 없어요. 내가 군인으로 30년을 살고 전역했는데, 사병들을 가르치는 교관이었거든. 그 덕분에 컴퓨터 다루는 법도 자연스레 배우고, 군 전산화 작업에도 참여했어요, 허허.”

플래시·파워포인트로 방과후 어린이에게 컴퓨터·한자 가르쳐

허문영 어르신은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던 해에 군에 몸담았다. 사병으로 입대해 1955년 시험을 거쳐 장교로 임관한 뒤 꼬박 30년을 군인으로 복무하고 1982년 전역했다.

“군에서 교관을 맡다보니, 나만 맨날 브리핑 장교를 시키는 거에요. 일주일에 한 번씩은 브리핑 차트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일일이 수작업을 하는 게 만만치 않습디다. 그래서 파워포인트를 공부하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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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허문영 어르신의 컴퓨터 경력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1970년대 들어 군 전산화 작업이 시작됐어요. 교관인 덕분에 저도 그 때 참여했는데요. IBM 컴퓨터를 전산실에 들여놓았는데, 당시만 해도 전산실이 교회 강당만큼이나 컸지요. 그 땐 키펀치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자료를 뽑곤 했어요. 다 옛날 얘기지, 허허.”

장교 시절 일찌감치 컴퓨터를 받아들인 덕분에 IT에 대한 두려움은 일찌감치 접었다. 1982년 대령으로 예편한 뒤 신학대학교 행정처장과 교무처장을 맡아 제2의 인생을 살다가 환갑을 맞아 다시 퇴직했다. 삶이 또 무료해졌다. 새로운 일을 찾고 싶었다.

“1992년에 교회 장로가 됐는데, 가만 보니 교회 건물이 주일이나 휴일에만 쓰지 평일엔 텅 비어 있는 거에요. 일주일 내내 쓸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게 방과후교실이었어요. 부모가 모두 직장에 나가면 아이들만 있는데, 이 아이들을 보호도 해주고 컴퓨터 교육도 하면 좋겠다 싶었죠.”

1999년말 서초구청에 인가를 얻어 3천만원을 지원받았다. 구청에서 장비를 교체하면서 남은 옛 컴퓨터도 10여대 기증받았다. 그렇게 50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2000년 방과후학교를 열었다. 꼭 10년 전 얘기다.

“내가 옛날 사람이잖아요. 아이들도 옛날 방식으로 가르쳐선 흥미가 떨어질 게 틀림없는데…. 파워포인트와 플래시로 교재를 만들면 아이들이 좀 더 재미있게 배울 것 같았어요. 친구와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교재를 만들고, 시중에 나와 있는 쓸 만 한 교재들도 두루 찾아 아이들 수업에 활용하기로 했어요.”

컴퓨터 교육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2004년부터는 아이들에게 한자도 가르치고 있다. 어릴 적 서당에 다녔던 덕분에 익힌 한자 실력이 컴퓨터와 만나 아이들에게 두루 전수되는 셈이다. 방과후학교 뿐 아니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대상으로도 수업을 실시한다. 요청하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마다않고 달려가 수업을 도맡는다.

“자녀를 둔 부모들은 대개 나이든 선생님을 원하지 않아요. 저는 나이가 많잖아요. 그게 제겐 컴플렉스였어요. 어떡하나. 아, 그러면 내가 어린아이가 돼야 하겠구나.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장난도 치고 함께 어울리며 수업하면 되겠구나! 다행히 외손주를 젖먹이 시절부터 15년동안 기른 경험이 있어서 아이들 눈높이를 맞추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수업을 듣는 아이들에겐 허문영 어르신이 친구나 다름없다. 먼저 다가와 장난도 치고, 스스럼없이 안기고 골탕도 적잖이 먹인다. 그래도 허문영 어르신은 마냥 즐겁기만 하단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장난치다보면 제가 젊어지는 기분이에요. 컴퓨터를 가르치며 스스로 생활도 더욱 즐겁고 자신감이 생겼고요.”

실버 창업 돕는 ‘온라인 창업 아카데미’

허문영 어르신이 컴퓨터를 매개로 새로운 삶을 꾸리게 된 데는 ‘동료’들의 도움도 적잖았다. 함께 모여 컴퓨터도 배우고 정기적으로 교류도 나누는 모임 얘기다. 매개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이하 한국MS)가 후원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 ‘온라인 창업 아카데미’다.

지난해 문을 연 온라인 창업 아카데미는 이른바 ‘실버세대’들이 IT를 벗삼아 새로운 노후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일자리를 구하기 만만찮은 어르신들이 온라인으로 일감과 즐거움을 동시에 찾을 수 있도록 컴퓨터 교육부터 창업 지원까지 원스톱으로 제공하고 있다.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와 손잡고 실시한다. 1년에 두 차례, 과정별로 11주 과정으로 진행된다.

허문영 어르신은 온라인 창업 아카데미 2기 수강생이다. 지난해 1기 강좌때는 곁눈질만 하다가, 2기부터 수강생으로 공식 참여했다. 일주일에 사흘, 30여명의 어르신들이 모여 전문강사로부터 컴퓨터 기본 사용법부터 인터넷 사용법, 세무·법률 강좌 등을 배웠다. 이론 수업이 끝나면 직접 G마켓이나 옥션, 11번가 같은 온라인 장터에 매장을 열고 직접 물건을 등록하는 실습도 했다.

어르신들은 대개 배움에 목마른 상태다. 온라인 창업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 최철호 과장은 “일단 수업이 시작되면, 혹시 배움에 뒤처질까봐 한시도 자리를 뜨지 않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라며 “수업이 끝나도 계속 남아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바람에, 다음 시간인 방과후수업을 듣는 아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다.

leecs온 라인 창업 아카데미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한 어르신도 적잖다. 이춘식(69) 어르신은 1980년도부터 ‘대우 애플 키드’였다. 일찌감치 컴퓨터에 눈을 떴고 환갑 넘어 독학으로 ERP(기업 자원 관리)를 공부해 전산세무회계사 자격증도 땄다. 온라인 창업 아카데미엔 1·2기 수강생으로 잇따라 참여해 동료 어르신들 컴퓨터도 가르치고 친구도 사귀었다. 그러다 복지관협회가 주선해준 모델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걸 인연으로, 지금은 이른바 잘 나가는 ‘실버모델’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실버 IT 교육은 그래서 중요하다. 실제로 복지관협회가 IT 교육을 마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125명 가운데 90%인 82명이 ‘교육 이후 삶의 질이 향상됐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된 이유로는 ‘일상 생활의 편리성 증가’(94%), ‘IT에 대한 자신감’(91%), ‘IT 활용능력’(90%)을 꼽았다. 어르신 4명 가운데 1명은 ‘젊은이와의 경쟁에서도 자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권찬 한국MS 사회공헌담당 이사는 “처음에는 MS 본사에서도 한국에서 어르신 대상 온라인 창업 아카데미를 진행하는 데 대해 미심쩍어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한국MS에서 적극 설득해 올해까지 프로그램을 이어가기로 합의를 이끌어냈다”며 “어르신들의 노하우와 경륜이 IT를 매개로 사회로 환원된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의미”라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의미를 설명했다.

새순교회는 얼마 전 방과후학교 강의실에 비치된 컴퓨터 15대를 새 제품으로 교체했다. 허문영 어르신이 앞장서 교회를 설득해 예산을 얻어냈다. 운영체제와 오피스SW는 한국MS에서 기증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교회에선 어르신들이 컴퓨터를 배우는 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미심쩍어했는데, 요즘은 교회도 적극 지원하고 교회에 나오는 어르신들도 관심을 갖고 많이들 문의하신다”고 허문영 어르신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권찬 이사는 “이웃나라 일본은 실버 정보화 교육에 큰 관심을 갖는 분위기이며 학계 연구도 활발한 편”이라며 “온라인 창업 아카데미는 뒤늦게 시작한 편이지만 좋은 파트너와 어르신들 덕분에 시행착오를 짧은 시간 안에 줄여 큰 보람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한 “앞으로 도시나 농촌 어르신들의 만남을 온라인으로 주선하고, 이 분들이 협력해 우리 좋은 먹을거리들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모델 등을 시도해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허문영 어르신도 남은 시간들을 오롯이 지금 일에 쏟아부을 생각이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옛 베이비붐 세대들에게 적합한 교육 기회를 만들고 확장하는 일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일이에요. 당장은 힘들더라도 참고 꾸준히 진행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믿고, 지금 일을 키우고 넓히는 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손주에게 왕따당하지 않으려면 노인들도 컴퓨터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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