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리스도의 수난

     설교자: 이 수영목사(새문안 교회)
     설교일자: 3/28/04
     설교제목: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는 주님
     설교본문: 이사야 53:4-6


   지난 월요일 저녁에 어느 시사회에 초청을 받아서 영화 한 편을 감상했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영어로 “The Passion of the Christ," 우리말로 옮기면 ”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멜 깁슨이라는 호주 출신 헐리우드의 배우 겸 감독이 제작한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다룬 지금까지의 그 어느 영화와도 분명히 달랐습니다.  이 영화는 최대한 복음서들이 전하는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재연(再演)해 보려 애쓴 작품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부터 십자가에 달리셔서 숨을 거두시기까지 예수님의 생애의 마지막 열 두 시간 동안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을 두 시간으로 압축하여 재연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예수님을 다룬 모든 영화들 중에 그 구성과 내용이 가장 단순한 작품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영화처럼 통렬하게 가슴을 치는 영화는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최대의 특징은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극 사실적으로 재연했다는 것입니다.  제작자는 이 영화의 사실성을 더 높이기 위해서 모든 대사를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그 언어로 녹음하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대사가 아람어로 나오고 로마 총독이나 로마 병정들이 하는 말은 라틴어로 나옵니다.  그리고 관람객들을 위해서는 영어로 번역해서 자막 처리를 했습니다.  
  
   저는 십자가의 처형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여러 가지로 이론적인 추측을 해왔지만 실제로 그렇게까지 잔혹하고 처참할지는 전혀 상상을 못했기에 이 영화로부터 받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이 영화 속에 병사들이 예수님께 행하는 가혹한 행위는 너무나 끔찍하고 야만스러워서 저는 한동안 눈을 감고 빨리 이 영화가 끝나기를 바랐을 정도로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반드시 보아야 할 영화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 번 고난절에 할 말을 다 잃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그 고난은 우리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표현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고, 예수님의 그 사랑과 대속의 희생이 너무나 거룩하고 숭고해서 더 이상 감히 언급할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 말 하지 않고 그저 여러분 모두가 꼭 한 번 이 영화를 보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번 사순절에 40일 특별 기도회에 참석하시는 심정으로, 또는 고난 주간 한 주일 금식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 한 편을 보시기를 권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어떻게 해서라도 시간을 내서 꼭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기왕이면 고난 주간 지나기 전에 보시면 좋겠습니다.  가능한 한 일찍 보시기 바랍니다.  시사회가 있다면 그 시사회에 가서 보시고, 아니면 개봉하자마자 보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으면 온 식구들이 다 함께 보시되 임신부나 심장 약하신 분들은 제발 보지 마십시오.  못 봅니다.  가능하면 노약자들과 어린이들도 피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예수님을 고발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대제사장들이 어쩌면 그렇게 위선적이고 가증스럽게 여겨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에게 폭력을 가하는 병사들에 대하여 얼마나 증오감과 분노심이 끓어올랐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도저히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자들로 보였습니다.  그들을 짐승 같다고 말하면 그 말이 짐승들을 모욕하는 말처럼 여겨질 정도로 그 병사들은 악독하기 이를 데 없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한참 영화를 보다 보니 그들의 그 포악하고 징그러우며 일그러진 모습들이 다 우리 모두의 모습으로 비춰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위선적이고 가증스러운 대제사장들의 모습도, 자신의 입신양명 때문에 무죄한 예수님을 군중들에게 내어주고 마는 빌라도의 모습도, 은전 30냥에 주님을 파는 가룟 유다의 모습도, 주님을 세 번 씩이나 부인하는 베드로의 모습도 다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른 사람 아닌 나 자신이며, 그들의 흉악한 모습이 곧 나의 자화상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 참혹한 고통 속에 몰아 넣은 것이 바로 나의 무지와 나의 불신앙과 나의 탐욕과 나의 이기심과 나의 배신이 아니었나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은 모든 죄가 그 로마 병정의 무서운 채찍이 되어서 예수님의 몸에 가해졌고, 그의 살점들을 뜯어냈고, 그의 피를 튀기게 한 것이란 말입니다.  영화를 보던 중간에 눈을 감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어쩌면 그 무지막지한 병사들의 폭력성 때문이 아니라 그 것이 다 내 죄라는 가책의 고통을 감당하기 힘들어서였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예수님께 가한 그 고통으로 나의 죄값을 대신 치르시고 내가 흘리게 만든 예수님의 피로 나의 죄를 씻으시는데 사용하신 것임을 이 영화는 다시 한 번 처절하게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바로 나 때문이고 나를 위해서였음을 다시금 깊이 되새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엄청난 고통을 아무 말 없이 당하시는 예수님을 보며 우리는 그 동안 우리가 가졌던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맥없이 무너짐을 또한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대한 예수님의 사랑 앞에서 그 동안 우리가 누굴 사랑한다고 했던 것은 사랑도 아님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용서한다고 했던 것은 용서도 아닌 것임을, 그 것을 용서라고 했던 것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가 믿음 때문에, 주님 때문에 고통받는다고 믿었던 것이 고통도 아닌 것으로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위해서 희생당했다, 희생한다 하던 말이 너무나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그 것은 희생도 아님을 예수님의 그 희생적 고통 앞에서 우리는 철저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가 주님의 말씀 따라 십자가를 진다고 여겼던 것은 십자가도 아니었고, 그 것을 십자가 지는 줄로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생각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죄 때문에 아무 죄 없으신 아들에게 우리의 모든 죄와 우리가 당해야 할 모든 고통을 담당시키신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희생 앞에서 모든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구원 사역의 완전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모진 고초를 겪으신 것은 바로 우리의 모든 죄를 남김없이 다 씻으시기 위함이신 것을 알게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신 것은 그 만큼 우리의 죄가 크고 흉하기 때문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역시 우리는 비로소 위로와 희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죄악을 지었다 할지라도, 그 어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바로 그 모진 예수님의 고통에 의해서 다 용서받았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이사야의 입을 통하여 무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으며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고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다음에 오는 7절에서는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12절에 내려가서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 이사야의 예언을 베드로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의 예언으로 받아들였고 베드로 전서 2장 21절부터 25절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이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는 대속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5절을 봅니다.  우리는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다.

   지금 사순절을 지내고 있는 우리는 오늘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우리가 얻은 치유가 어디서 온 것이며 누구에 의해 주어진 것인지 다시 한 번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받으신 그 혹독한 고난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그 어떤 사람을 대해서든 우리가 품었던 탐욕과 시기와 이기심이나 우리가 저질렀던 위선과 기회주의적 처신과 배신과 비난과 중상과 모함과 정죄와 잔인함이 그 당사자들 뿐 아니라 주님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 주었을 것인지도 바로 깨닫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그 측량할 수 없이 크고 놀라운 대속적 고난의 은혜로 말미암아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되찾아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위의 설교는 정 신자 집사님이 C3TV에서 방송을 듣고 받아적어서 여기에 싣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