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중에 함께 하신 하나님


장 선혜

지난 10월 14일부터 성훈이는 통제되지 않는 고열과 그로 인한 심한 탈수 증세로 인하여 U of M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였습니다. 다음날 새벽에는 45분간의 경기로 인해 기도(氣道)까지 막혀 스스로 호흡할 수 없는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날 이후 연약한 성훈이의 몸에는 수십 개의 주사바늘이 꽂히고, 호흡기를 비롯한 각종 기계 장치가 연결되었습니다. 계속되는 경기를 멈추게 하기 위해 독한 약들이 투여되었고, 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coma 상태에 들어간 성훈이의 뇌는 계속해서 엉뚱한 명령을 내려 복잡한 의료적인 문제까지 발생하였습니다. 그로부터 2주, 어떠한 약물도 성훈이의 경기를 멈추게 할 수 없다고 판단한 담당 의료진은 마침내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 연락하기를 권하면서 󰡒He may die at this time.󰡓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가 저에게 가장 힘든 때였습니다. 경기약 투여중단 등의 중대 결정을 내리기 위해 주치의를 비롯한 여러 의사 선생님들과의 면담이 있던 날, 저는 오후 4시인 면담시간을 기다리면서 아침부터 아주 오랫동안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 우리 성훈이를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성훈이에게서 죽음의 그림자를 치워주시옵소서.󰡓 이렇게 시작한 기도는 어느덧 마음속 깊이 숨겨놓았던 저의 성훈이에 대한 죄책감과 그 죄에 대해 당장 용서를 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절박감으로 변해갔습니다. 󰡒하나님, 성훈이가 제 인생의 짐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음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성훈이의 존재를 부끄러워 한 적이 있었음을, 저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느냐며 하나님을 원망한 적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부모의 믿음으로 아이의 병을 고치는 기적을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줄 알지만, 아직 그 믿음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라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동안 성훈이를 통하여 저에게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에 생각이 미치고,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성훈이가 참으로 많은 일을 하였음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성훈이를 통해 오래 참고 인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다른 사람과 이웃의 고통을 돌아볼 줄 알게 되었습니다. 8살인 성훈이가 일년에 겨우 한두 번 정도 소리 내어 웃는 웃음과 울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통해, 작은 것에 행복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소명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참 의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라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성훈이를 이 세상에 보내신 뜻을 이미 이루었으므로, 지금 그를 데려가려고 하시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초조하고 슬펐던 저의 마음은 다소 평안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가 떠올라 다음과 같이 간구했습니다. 󰡒하나님! 가능하시다면 죽음의 잔을 성훈이에게서 지나가게 하시고, 기적의 두루마기를 입혀주시옵소서. 그것이 너무 큰 욕심이라면 저에게 조금만 더 성훈이를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십시오. 그가 언젠가 하늘나라로 간다고 하더라도 그 시간으로 인해 저의 슬픔이 위로 받게 하여 주십시오. 하지만 그를 지금 불러 가셔야 한다면, 저에게 다가올 비통함을 용감하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이쯤이 되자 눈물은 흐느낌으로, 통곡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저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마치면서도, 이 믿음 약한 엄마는 󰡒그러나 하나님 제 마음 다 아시지요.󰡓라고 덧붙이고 있었습니다.

그 날 이후 수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성훈이는 급속하게 회복되었고, 45분간의 긴 경기에도 불구하고 뇌에 아무런 손상을 받지 않은 상태로 한 달 반여 만에 퇴원하여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오 년 간 성훈이는 계속 상태가 나빠져서, 소리 내어 울지도 미소 짓지도 못했었는데, 지금은 매일 소리 내어 울고 가족의 관심에 미소를 보냅니다. 성탄 이틀 전 정기진료 차 만난, 8년간 줄곧 성훈이를 보아 온 은퇴를 앞둔 노의사 선생님은 성훈이의 상태가 급격히 좋아진 것을 확인하고는 기적 같은 일이라고 흥분하며 저희 부부의 손을 꼭 잡아주셨습니다.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난 뒤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것으로 예비하여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저와 저희 가족, 친구들, 미네소타 한인 장로교회 성도님들의 기도의 응답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그 동안 성훈이를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올해의 막바지에 겪은 고통 속에서, 늘 저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지금 이 순간도 우리 곁에 살아 임재하시어 희망찬 새해를 열어주시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2003. 12. 31: 송구영신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