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우리들의 어머니
(강사 : 이 영길 목사님)


황 수권 권사

교회여성 교육원 단기교육 과정에 참석하고 온 뒤에 여전도 회장이 지난 10월에 참석한 강의 중에 “교회는 우리들의 어머니다” 이것을 간단히 정리하여 원고를 써 달라고 하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간단히 강의 내용을 교우들이 이해와 은혜가 될까 하고 기도하면서 기억을 더듬으면서...

1. 교회를 어머니로 부르는 자들;
김 인식 목사님은 “교회는 너희들을 키웠다. 교회에 감사하라” 하시었습니다. 초대 교회에 유명한 교부 중 한 사림인 사이프리안(Cyprian)은 “당신은 교회를 당신의 어머니로 가지지 않는 한 하나님을 당신의 아버지로 가질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어머니로 가진다는 것은 능력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교회를 우리의 어머니로 모실 때 교회는 우리를 어떻게 키울까 교회가 우리를 키웠습니다. 라고 고백할 때에 어떤 체험을 할까요? 작아지는 체험을 하게될 줄 압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될 줄 압니다. 교회는 우리를 작아지게 합니다. 이것이 교회에서 키움을 받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사도 바울은 처음에는 사도 중에 제일 작은 자라 다음에는 성도 중에 제일 작은 자라 끝으로는 죄인 중에 괴수니라 고백하는 삶을 살게 될 줄 압니다. 교회를 어머니로 모시는 자는 작아지게 됩니다. 그러나 작아지기에 도리어 능력의 사람이 됩니다. 하여튼 교회를 어머니라고 부르기는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로 부를 때에 엄청난 축복이 임합니다.

2. 바울과 교회 (교전 15:19, 엡 3:8, 딤전 1:15)
이 말씀을 읽으면 왜 사도 바울이 그토록 능력있는 크리스챤이 되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세 편지가 쓰여진 순서를 알면 해답은 저절로 나옵니다.

고린도 전서는 사도 바울이 사도로서의 생활 초기에 쓰여졌다고 봅니다.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사도 생활 중기 말기에 쓴 것으로 볼 수 있고, 디모데전서는 거의 유언처럼 쓰여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직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은 처음에는 사도 중에 제일 작은 자라고 고백 했습니다. 다음에는 성도 중에 제일 작은 자라고 고백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떠나기 얼마 전에 “미쁘다 모든 사람들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늘 작아졌던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매일 작아질까요. 교회는 우리들의 어머니다. 교회가 너희를 키웠다. 교회에 감사하라. 이 말씀이 우리들의 마음에 들어와 있고 많아질 때가 아닐까요.

3. 나와 교회 ;
교회 생활을 통해 우리는 많은 상처를 보고 느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눈이 떠지고 참된 성장이 있지 않을까요. 옛날에 독실한 신자들이 모였다고 생각되는 수도원에도 많은 모순과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안에서 참 수도가 가능했습니다. 하물며 오늘의 교회는 어떻겠습니까? 교회로 인하여 마음에 상처를 주고받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마음 아픈 일은 그 일로 인하여 신앙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네딕트는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가 바로 수도하기에 가장 좋은 때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는 모순과 상처 가운데서 함께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할 때에 참된 크리스챤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사이프리안의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다 라는 생각과 베네딕트의 교회 안의 모순과 상처 없이 참된 신앙의 성장이 없다는 생각을 곰곰이 묵상해 보았습니다. 열  달 동안 그 어려운 고통을 지나서 목숨을 걸고 아기를 낳고 지친 마음 연약한 몸을 가진 어머니는 아이를 가슴에 품었습니다. 힘든 그 과정이지만 고난의 모성애--이 모습이 바로 자기가 간직하고 있는 모성애의 어머니 모습으로 소개됩니다. 이 모습이 우리 어머니 된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는 연약한 몸을 따뜻한 사랑을 가지고 아이를 꿈에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어머니 된 교회의 이 모습을 만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 안에서 모순과 상처와 아픔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모순과 상처와 아픔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교회 안에 있는 모순과 상처와 아픔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에 우리에겐 놀라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어머니의 힘든 과정을 지나서 아기를 품은 모성애 같이요. 이럴 때에 우리가 우리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요?

모순과 상처와 아픔을 안고 우리를 안아주시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가득 찬 주님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요. 이 연약한 어머니의 모습을 안고 우리를 안아 주시는 주님의 모습 지금도 우리 주님은 어머니와 같은 사랑을 가지고 많은 상처를 안고 연약한 몸으로 우리를 안아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모순과 위선, 아픔과 상처를 도리어 나를 위한 것으로 생각할 때에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작아지고 작아질 때에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의 사랑을 안고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가 우리를 키웠습니다 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4. 교회의 참 모습;
베네딕트는 아름다운 것들만 좋아 모이는 것들만 많이 접함을 통하여 수양이 쌓아지고 수도 생활이 꽃 피리라는 생각은 큰 잘못이다. 수도사는 자신 안에 있는 어두움을 접할 줄 알아야 한다. 무료함, 성적 유혹, 안절부절못함, 답답함, 충족되지 않은 욕구들을 접할 때 우리의 수도 생활은 점점 성숙되어진다. 수도원에서 비천해지는 자신의 삶의 모습과 때로는 전혀 영적인 것과 관계없는 경험도 수도생활에 꼭 필요하다. 예를 들면 원하지 않은 인간과의 만남 들이다. 우리는 수도원에서 참 인간의 모습을 만나야한다. 참 인간의 더러운 모습을 만날 때에 우리는 착각의 세계에서 벗어나 참으로 윌 자신을 보게 된다. 이것 없이 참 수도는 불가능하다. 라고 말합니다.

5. 어머니 교회로서의 이민 교회;
세계로 향하는 교회가 되자. 육신의 어머니가 있지만 또 우리의 전 삶을 보살펴 주시는 교회 어머니가 계십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민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을 파송한 교회는 안디옥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디옥 교회를 택해서 사도 바울이 낳게 하시고 선교 여행 중 13개로 퍼져서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섬기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돕고 있는 안디옥 교회를 모델로 삼아야 합니다. 오늘도 이민 교회를 통해서 세계를 향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실 것입니다. 신약에 의하면, 안디옥 교회는 인종의 벽을 무너뜨리는 교회였고 큰 사역은 문화의 벽, 인종의 벽을 무너뜨리는데서 하나님은 크게 일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하나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끼리만 뭉칩니다. 이민교회는 인종을 무너뜨리는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고국 교회는 거의 할 수 없음)그 시대에는 남자로, 유대인으로, 또, 자유인으로 태어남을 감사하던 때였습니다. 노예가 아니라도 그 시대는 이방인을 짐승으로 취급하였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어떻게 헬라인을 받았나요? 하나님의 역사로 안디옥 교회 교인들에게 진짜 이방인이 짐승이 아니며 나에게도 짐승이 있구나 하고 겸손해지므로 이방인들에게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진실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은 이민교회를 통해서 세계를 향하는 놀라운 꿈을 꾸게 합니다. 미국 비자면 세계를 다 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민교회가 성경 안에 모델교회에서(안디옥 교회) 사도 바울이 태어나듯이 우리 이민교회에서도 어떤 인물이 태어났느냐가 문제입니다. 누가 제일 많은 성도를 가진 교회가 되는가가 문제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중국의 만주에 명동 이민교회에서 윤 동주, 문 익한 같은 분들이 태어났습니다. 이민교회에서 관심거리는 누가 나왔느냐 이것이요, 교회는 우리를 기르시는 어머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지도자의 말씀을 받아드리고 양육 받아드리는 교회였고 구제하는 교회였습니다. 구제하는 사람들이 세계를 바로 보고 미래를 바라보는 자들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안디옥 교회의 아름다운 인종벽, 문화벽을 통하여 하나님의 크신 사역이 있었습니다. 교역자를 통해서 순순히 받아들여서 성장하고 구제하는 교회를 본 받기를 기도하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십시다.

6. 나의 어머니 교회;
어마 밤벡(Erma Bombeck)이라는 작가는 어머니를 창조하였을 때(When God Created Mothers)라는 책을 썼습니다. 어마 밤벡은 자기 어머니의 부족하고 모순된 어머니로서의 모습을 사랑하였을 것입니다. 그때에 어마는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가장 고귀한 어머니 모습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새로 임직하는 제직 여러분, 부족한 우리 교회의 모습들을 사랑하기 바랍니다. 모순과 상처 가운데서 교회를 사랑하노라면 가장 고귀한 어머니 된 교회의 모습을 만날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는 죽음을 앞에 두고 찬송을 부르는 확신의 믿음을 소유할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을까요? 여러분 우리가 교회를 사랑한다면 부족해 보이는 교회를 어머니로 가진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 때에 우리는 오랜 세월을 걸쳐서라도 세계를 변화시키는 자가 됩니다. 모두들 사도 바울의 고백에 동참하게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교회를 어머니로 모시며 사모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합시다. “교회가 우리를 키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