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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11. The Top Ten Reasons
We Know the New Testament Writers Told the Truth (pp275-297)

우리는 신약문서들이 목격자들에 의한 동시대 기록이라는 매우 강력한 증거를 보았다. 그렇다면 신약의 저자들이 목격담을 과장 혹은 미화시키지 않았다는 보장이 있는가? 적어도 10가지 증거를 아래 제시한다.

[증거 1] 신약저자들은 자신들에게 당황스러운 내용들은 상세하게 서술했다.

(1) 저자들은 종종 바보로 묘사된다 (Dim-witted): 그들은 너무나 자주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
[마가 9: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누가 18: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요한 12: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2) 저자들은 부주의하다(Uncaring): 예수님이 기도하라고 요청했을 때 그들은 두 번이나 잠에 떨어진다 (마가 14: 32-41). 더우기 그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어떻게 장사지낼 것인지에 대한 고려도 없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제자들 대신 자신 소유의 무덤에 안치한다.

(3) 저자들은 힐책당한다 (Rebuked):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이라고 불리워지고, 바울은 신학적 문제에서 잘못된 것에 대해 베드로를 비난한다. 베드로는 당시 기독교 교회의 기둥이었다.
[마가 8: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갈라디아서 2: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4) 저자들은 겁쟁이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힐때 한명만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숨었다. 베드로는 심지어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한다 (마태 26:33-35).

(5) 저자들은 의심자였다: 에수님이 죽음으로부터 살아날 것임을 여러 차례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요한 2:18-22, 3:14-18, 마태 12:39-41, 17:9, 22-23),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을 때 의심한다.
[마태 28: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이 점을 생각해보자. 당신이 신약의 저자들 중 한 명이고 이야기를 꾸며내고 있다면 이러한 당황스러운 세부사항들을 넣겠는가?

[증거 2] 신약저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당황스러운 세부사항들과 예수님의 어려운 가르침들을 기록했다.

신약의 저자들은 예수님에 대해서도 당황스러운 세부 사항들과 예수님의 어려운 가르침들을 포함했다. 예수님은 친족들에 의해 ‘미친 자’ 로 간주된다 (마가 3:21, 31), 예수님의 형제들은 믿지 않는다 (요한 7:5-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속이는 자로 간주된다 (요한 7:12), 많은 추종자들에게 버려진다 (요한 6:66-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귀신들린 자로 불린다 (마가 3:22, 요한 7:20-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요한 8:48-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미친 사람으로 불린다 (요한 10:20-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매춘부의 머리카락으로 발이 닦여진다 (누가 7:38-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이는 미리 성적인 사건이 있었다고 간주될 위험이 다분한 사건임). 이러한 당황스러운 내용들을 굳이 왜 기록했는가에 대한 최고의 대답은 신약저자들이 정말 일어난 사건들을 사실대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신약의 저자들은 꾸며낸 이야기였다면 포함되지 않았을 이해하기 어려운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기록한다: \“아버지는 나보다 크다 (요한 14:28)”. 예수님은 자신이 한 세대 안에 세상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잘못 예측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태 24:34). 예수님은 그의 재림 시기에 대해 아무도, 천사도,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 조차도 모른다고 말한다 (마태 24:36). 부자 관원의 질문에 대해 당신 스스로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 나를 선하다 하는냐, 이 세상에 선하신 이는 하나님 말고는 없다 (누가 18:19). 예수님은 제 계절이 아니므로 열매가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였다 (마태 21:18).

만약 신약의 저자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완벽하게 증명되길 원했다면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이와 같은 기록들을 왜 넣었겠는가. 그리고 예수님은 완벽하게 병적인 주장을 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6:53)”.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후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요한 6:66)”.

[증거 3] 신약 저자들은 인간으로서 상당한 어려움이 요구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록했다.
산상수훈과 같은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 예로,
[마태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태5: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마태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마태 5:44-45]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이러한 가르침들은 인간이 지키기에는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만약 어떤 죄를 생각하는 것조차 죄가 된다면, 신약의 저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유죄라는 의미이다. 누가 그러한 기준들로 살 수 있는가? 그러한 명령은 확실히 인간이 그들 자신에게 부과할 수 잇는 명령들이 아니다.

[증거 4] 신약의 저자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자신의 말을 주의깊게 분리한다.
[고린도 전서 7:10-12]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증거 5] 신약 저자들은 만약 그들이 부활 사건을 꾸며냈다면 절대 포함시키지 않았을 종류의 이야기를 포함한다.

(1) 예수님의 시체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 의해 매장되는데, 만약 신약 저자들이 부활 이야기를 꾸며냈다면 이는 넣지 말았어야 할 이야기이다. 왜 그들이 예수님의 매장과 같은 favorable light에 산헤드린 사람을 끌어들이는가?

(2) 더우기 예수님 부활의 첫 번째 목격자들은 모두 여성들이었고, 그 여성들 중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 들렸던 여자였다 (누가 8:2-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이는 꾸며진 이야기라면 절대 넣지 말았어야 할 이야기이다. 한번 귀신들렸었던 사람의 목격의 신뢰도가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사실 여성의 증언은 법정에서 효력이 없었다. 여성의 증언을, 특히 귀신들렸던 여성의 증언을 인용하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사실로 믿게 하려는 시도를 한참 손상시키는 것이다.

(3) 회의론자들은 종종 \“왜 부활한 예수는 바리새인들에게는 나타나지 읺았는가” 질문을 던지지만,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종종 간과되는 사실 은 많은 유대교 제사장들이 신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사도행전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4) 유대인들의 설명들: 빈 무덤에 대한 유대인들의 설명이 마태복음의 말미에 포함된다
[마태 28:11-15]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증거 6] 신약 저자들은 그들의 저술에서 30명 이상의 역사적 인물을 포함한다.
신약이 꾸며낸 이야기기 될 수 없는 이유들 중 하나는, 신약문서들은 정말 많은 역사적 인물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증거 7] 신약 성서 저자들은 다양한 세부 사항들을 포함한다.
비평가들은 신약성서가 꾸며낸 이야기(부정확성)라고 주장하기 위해 복음서 간 모순되는 구절들을 인용한다. 예를 들면 마태는 무덤에 한 천사가 있었다고 말하고 (마태 28:5), 요한은 두 천사라고 말한다 (요한20:12). 이것이 복음서의 신뢰도를 무너뜨리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Divergent details은 이들이 목격자라는 사실을 더 강화시킨다. 두 신문사의 두 신문기자가 한 사건을 보고한다고 하자. 오히려, 세부 사항이 같으면 사전 공모 의혹이 더 크지 않겠는가. 따라서 마태와 요한의 세부 서술이 다른 것은 목격자의 증언으로서 정말 reasonable하다. 우리는 실제 상황이 어떠했는 지 확실히는 모른다. 단지 우리는 그러한 차이가 목격자들 간에 나타는 일반적인 사항임을 안다. 신약 성경의 다양한 세부 묘사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저자들이 자신들의 증언을 미리 말을 맞추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모순을 보이는 것은 신약성경이 아니라 비판가들이다. 한 쪽의 비판가들은 신약의 복음서(마태, 마가,누가복음) 들이 너무 단일해서 단일한 원천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편의 비판가들은 진리를 말하는 방식에 있어 너무 divergent 하다고 말한다. 그럼 신약저술들이 너무 단일한가, 아니면 너무 다양한가? 둘 다 맞다. 왜냐하면 단일한 사건들에 대한 독립적인 목격자들의 진술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사건에 대해 AP, Reuters, UPI로부터 신문기사를 뽑았다고 하자. 세 기사는 서로 보완적이겠지만, 모순되지는않는다. 신약도 마찬가지다.

[증거 8] 신약의 저자들은 독자들에게 기적을 포함한 다양한 사실들을 확인해보라 말한다.
누가는 데오빌로 각하에게 자신이 보내는 편지의 정확성을 단호하게 주장한다.
[누가복음 1:1-4]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베드로후서 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사도행전 26장-아그립바왕에서 자신의 스토리를 말하는 바울] 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고린도 전서 15장] 등.

만약 사도바울이 직접 기적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이 편지를 고린도인에게 왜 보냈는가? 바울의 신뢰도가 완벽하게 손상될 수도 있다. 가능한 결론은 바울은이 정말 하나님의 사도라는 점, 그가 정말 기적 체험에 의해 스스로의 사도성을 확인했다는 점, 그가 자신의 능력을 고린도인들에게 공개적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증거 9]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기적을 역사적 사건처럼 묘사한다.
기적들도 다른 역사적 사건들의 기록처럼 호들갑없이 미화하지 않는 태도로 묘사한다.

[증거 10]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자신의 오랜 유대 신앙과 생활방식을 포기하고 새로운 신앙으로 개종했으며 죽음의 위협에서도 그들의 증언을 거부하지 않았다.
신약의 저자들은 단지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고 죽음으로부터 살아났다 말만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극적인 행동 변화가 그들의 증언을 뒷받침한다. 첫번째, 그들은 무려 1,500여년 간 이어져 내려온 유대교 신앙과 전통을 하루 밤에 포기했다. 즉, 동물 제사 제도를 예수님에 의한 단 한번의 영원한 제사로 대체하였다. 그들은 모세법의 최고 우위를 거부하고 예수님이 율법의 완성임을 고백한다. 유대 전통의 강한 일신론을 거부하고 신이자 인간이신 예수님을 경배한다. 안식일을 어길 경우 죽음으로 처벌됨에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 신약의 저자들만 위와 같은 변화를 보인 것이 아니다. 바리새 제사장을 포함한 수 천명의 유대인들도 위와 같은 변했다. 만약 신약이 꾸며낸 이야기라면 이러한 기념비적인 전환이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부활이 실제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러한 전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러한 개종자들은 자신의 오래된 전통을 버렸을 뿐만 아니라, \“일요일 예배”, \“침례받기”, \“성찬식” 등과 같은 혁신전인 변화도 행하였다. 특히, 성찬식은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정말 설명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신약의 저자들은 그들의 신앙 때문에 박해박았고 죽임당하였다. 예수 부활을 부정만 하면 살 수 있었다. 그들 스스로 부활 이야기를 날조한 것이라면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즉, 사도 바울은 교수형 앞에서, 야고보는 돌로 쳐 죽임 당하기 전에, 베드로는 십자가에서 죽임당하기 전에 모든 것을 고백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부정하지 않았다. 12명 중 11명이 그들의 신앙을 위해 순교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약저자들의 주장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이슬람의 순교자들은 어떠한가? 우리는 매일매일 중동의 자살 특공대를 본다. 911을 이미 잊었나? 그 납치범들은 알라신을 위해 순교하고 있다. 순교가 무엇을 증명하는가? 이슬람교도 진리라는 것을 증명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약간의 유사성은 있으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한 가지 유사성을 들자면 기독교인이건, 이슬람 교도이건,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이건 모두 순교는 그들만의 이유에서 진실하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는 신약 성경의 기독교인 순교는 부활이 참이라는 증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신약 성경의 순교자들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목격자들이었다. 그들은 부활이 참이고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한 강한 경험적 증거의 견지에서, 그들은 부활을 믿기 위해 신앙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강력한 증거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기꺼이 박해받고 죽었다.

그러나, 이슬람은 그렇지 않다. 현재 이슬람의 순교는 확실히 진실하나, 이슬람교가 사실이라는 기적적인 목격 증거들을 가지고 순교하는 것은 아니다. 마호멧이 기적을 행하기를 기대되었을 때 그는 결코 그 도전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은 한 명의 인간이라고 말했다. 기독교인들은 마호멧이 예언자가 맞냐는 증거를 지속적으로 요구했기 때문에 마호멧의 사후 100-200년 경 이슬람교도들은 마호멧과 관련된 기적을 추가하였다. 그러나 그 기적은 목격자의 증언같은 것이 아니었다. Hadith의 가장 신뢰할만한 저자인 Al Bukhari도 대부분의 이슬람 학자들이 마호멧의 기적들은 믿을만하지 못하다고 생ㄱ가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마호멧의 기적이 확인되지 않는 것이라면 이슬람 교도들은 왜 마호멧을 추종하는가? 사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마호멧과 그의 추종자들은 AD 622년에 메카로부터 축출당했으나, 622년과 630 사이 마호멧의 군사적 정복은 성공적이었다. 다시말해, 마호멧의 대중성은 기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군사적 승리와 정치적인 고려들, 개인적인 카리스마로부터 나왔다. 또 한 가지 기독교의 예와 정반대의 사실이 있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으나, 초기 이슬람 시대에는 이와 정반대로 이슬람교도가 되지 않는 것이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다시 말해, 이슬람교는 사람들에게 칼을 들이대면서 확대되었고, 기독교는 기독교인들의 목에 칼이 들어옴에도 확대되었다.

이 장의 중심 질문은 신약 저자들은 이야기를 만들고, 미화시키고, 과장하였는가였다. 우리의 대답은 \“No” 이며, 이에 대해서는 10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신약 저자들은 새로운 종교를 만들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러한 모든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회의론자들은 여전히 신약이 거짓말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다음 유일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신약저자들은 속았다”. 즉, 신약의 저자들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했으나 그들의 믿음은 틀린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12장에서 다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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